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콜라이 바투틴 (문단 편집) === 중부 전선의 활동과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의 활약 === 1942년 동계 공세가 시작되자 바투틴은 데미얀스크 포위 작전을 입안했고 데미얀스크 일대의 독일군을 포위망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데미얀스크 포위망은 너무 약했고 공군력의 부족으로 인해 포위망 안의 독일군은 공중보급으로 버티며 포위망을 계속 위협했다. 결국 바투틴의 포위망은 독일군의 반격에 뚫리고 말았다.[* 그러나 데미얀스크 포위전에서의 공중 보급 성공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헤르만 괴링]]이 공중 보급의 효율을 과신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1942년 6월에서 7월 독일군의 청색 작전이 개시될 동안 바투틴은 총참모부로 돌아와 있었다. 1942년 7월 1일에 바투틴은 보로네시 전선군과 위험에 처한 브랸스크 전선군을 통합 지휘하는 [[스타프카]] 대리로 임명되었다. 한편 체르냐홉스키가 제18 전차 군단을 이끌고 독일군의 공세에 붕괴 위기에 처한 보로네시 전선군을 구원하러 제때에 달려오자 바투틴은 체르냐홉스키를 제60 소총군 사령관으로 승진시킬 것을 스탈린에게 건의해 승인받았다. 독일군은 보로네시를 점령했지만 보로네시 전선군의 방어선은 붕괴되지 않았다. 한편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한창일 때 천왕성 작전이 입안되자 총참모장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대장은 바투틴을 새로 창설된 남서전선군 사령관에 임명해 [[콘스탄틴 로코솝스키]]의 돈 전선군과 함께 스탈린그라드 역포위 작전인 천왕성 작전에 참여하여 로코솝스키와 협격해 스탈린그라드를 역포위할 것을 명령했다. 아직 지나치게 젊은 장군이었던 바투틴에게 그런 중책을 맡기기는 힘들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지만 바실렙스키는 끝내 바투틴에게 임무를 맡겼다.[* 이 때문에 한동안 바투틴은 바실렙스키의 낙하산이란 말이 돌았다.] 바투틴은 로코솝스키와 함께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프리드리히 파울루스]]의 독일 제6군을 파멸로 몰아넣는데 큰 기여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